아카미네 세이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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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본의 교사, 정치인. 일본공산당의 유일한 지역구 중의원 의원이다.
2. 생애[편집]
1947년 12월 18일, 오키나와현 시마지리군 오로쿠 마을(현 오키나와현 나하시 오로쿠 마을)의 농가에서 5명의 아이들 중 셋째로 태어났다. 나하시립 다카라 소학교, 나하시립 오로쿠 중학교, 오키나와현립 나하 고등학교를 거쳐[2] , 쓰쿠바대학 문학부를 졸업한다. 재학 중이던 1967년, 20세의 나이로 일본공산당에 입당한다. 대학 졸업 후 이시가키시에 있는 오키나와현립 야에야마 고등학교의 교사가 된다.[3]
1966년 오키나와현 학생회 연락 사무국장, 도쿄도 오키나와현 학생회 사무장을 역임하며 미국 치하 오키나와의 실상을 알리는 학생운동을 한다.
1985년, 나하시의회 의원이 된다. 1997년까지 3선을 한 뒤 2000년 제42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일본공산당 공천을 받아 오키나와현 제1구에서 출마해 공명당의 시라호 다이이치에 패배하고 규슈 비례블록에 중복 입후보로 당선되었다. 이후 2003년 제43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무소속 시모지 미키오에게 패한 뒤 중복 입후보로 비례대표가 된다. 2005년 제44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또 출마하나 3위로 패배, 다시(...) 중복 입후보로 비례대표가 된다.
결국 지겨웠는지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규슈 비례블록에만 등록을 해 비례대표 4선을 했다. 이후 2012년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출마하나 자유민주당 소속의 고쿠바 고노스케에게 패배하고, 다시 비례대표로만 5선을 한다.
그러다가 2014년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오나가 다케시 전 오키나와현지사[4] 와 사회민주당, 생활당, 오키나와 사회대중당, 녹색당 그린스 재팬 등 야권의 통합된 지지를 받는 후보로 오키나와현 제1구에 출마하여 마침내 당선되었다. 그의 당선으로 일본공산당은 제41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이후로 18년 만에 중의원 지역구 의석을 확보하게 되었다.[5] #
2017년에 실시된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지역구인 오키나와현 제1구에 재출마하였고, 보수진영이 고쿠바 고노스케 자민당 후보와 시모지 미키오 일본유신회 후보로 분열된 상황에 힘입어 당선되었다.[6] 이로써 7선을 달성하였으며, 지역구 재선에 성공하면서 일본공산당 내 입지를 확실히 굳혔다.
2021년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도 공산당 출신으로 소선거구제 도입 이래 지역구로만 3선을 성공하였으며, 오키나와 2구의 아라가키 구니오와 함께 오키나와 진보 축을 담당하게 되었다.
3. 정치 성향[편집]
여느 일본공산당의 정치인과 마찬가지로, 과거사 문제에 열려있으며 사회적으로도 진보적인 입장을 표하고 있다.
4. 기타[편집]
- 시즈오카 공항을 반대할 때 서명한 적이 있다.
- 가족으로는 아내와 아들 3명, 5명의 형제자매가 있다.
- 좋아하는 음식은 오키나와 소바[8] , 흑설탕, 사과, 오키나와 튀김이 있고, 취미는 연극 감상과 스포츠 관전이다.
- 존경하는 사람은 후루켄 사네요시[9] , 세나가 가메지로[10] 가 있다.
- 교사 시절 밝고 정의감이 강했으며, 차세대를 짊어질 아이들의 교육에 열정을 가졌고, 가끔 술이 들어가면 이탈리아 민요를 불렀다고 한다.
5. 소속 정당[편집]
6. 선거 이력[편집]
7.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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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A B C D 석패율 비례대표[1] 규슈 권역 비례대표[2] 같은 좌익 정치인 다카라 데츠미도 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여담으로 고등학교 당시 합창부였다고 한다.[3] 대체로 일본 교육계 쪽은 좌파 성향이 강하다.[4] 1950년 출생으로, 자유민주당 소속이었으나 탈당한 뒤 좌파로 전향하여 공산당, 사민당 등과 함께 정치 활동을 했다. 2018년 8월 8일 췌장암으로 별세하였는데, 그의 장례식에는 스가 요시히데, 다마키 데니 등 300명이 참여했다.[5] 참고로 이 총선에서 집권 자민당은 오키나와현 4개 선거구에서 전패하였다. 당시 아베 신조 내각이 추진한 미군 기지 이전 문제를 두고 지역 정가에서 찬반 격론이 벌어졌는데, 오키나와 현민들 사이에서 기지를 오키나와로 이전하는 것에 반대하는 의견이 더 강했기 때문에 이 점이 야권연합세력에 유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6] 다만 2위로 낙선한 고쿠바 후보와 3위로 낙선한 시모지 후보는 모두 석패율제 덕에 구제받아 비례대표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또한 두 후보가 단일화를 이루었다면 그 단일후보가 손쉽게 승리했을 것이라는 점에서, 아카미네 의원으로서는 쉽지 않은 싸움이었을 것이다.[7]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8] 오키나와 소바는 일본 본토 소바하고는 다른 음식으로 오히려 우동에 가까운 음식이다[9] 일본공산당 소속 오키나와현 전현구 중의원 의원이었으며, 규슈 비례블록 중의원 의원이었다. 현재도 살아있다.[10] 일본공산당 소속이었으며, 나하시 시장이었다. 미국에 대한 저항 운동을 했다. 2001년 94세의 나이로 사망.[11] 선거 이래 첫 지역구 당선